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다. 내가 본 영화는
디즈니·픽사의 <soul>
픽사 특유의 어른이를 위한 영화를 좋아해서
인사이드아웃도 정말 잘봤는데!
언니가 같이 보러가자해서 신나게 달려갔다.
어느 사이트의 영화 후기는 이렇게 말했다.
"영화를 보고 나와 하늘을 보는 것까지가 완성이다"
정말이다.
이 영화는 다 보고 나오는 것에서 감상이 끝나지 않았다.
독특하고 허무한(?) 쿠키영상이 있었음에도
영화관을 나와 하늘을 바라보고, 친구와 밥을 먹고,
혹은 집으로 향하며 맥주 한 캔을 사가는 순간까지가
영화의 환성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.
영화보고 나오니 그렇게 페퍼로니 피자가 먹고싶더라..
근처에 맛있는 피자 가게를 잘 몰라서
차타고 나가 수제버거를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.
연차를 쓰고 영화를 본 뒤 먹는 햄버거는 최고였다.
마치 엄마몰래 아빠랑 스키타러 놀러간 아이의 기분?
유치원도 안가고 마지막에 아빠랑 비밀약속한 그런 신남x신남x신남의 기분!
영화를 다 보고 나와 꽤 유쾌했던 기분과는 또 다르게,
영화를 보는 중간에는 계속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.
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, 당연히 누렸던 일상의 아쉬움이었다.
같이 본 언니도
사람들이 코로나 이전처럼 자유롭게 거리를 뛰어다니는 모습이
아쉽고 그리워 눈물이 찔끔 났다고 했다.
내 감상도 비슷했다.
난 1년 3개월 전 혼자 떠났던 뉴욕 여행을 떠올렸는데,
혼자, 때로는 친구들과 걸었던 뉴욕 거리들이 영화 속에 너무나 생생하게 담겨있어서 자꾸 겹쳐보였다.
특히 <호석's 호호만두> 간판을 비추며 내려오는 장면은
내가 묵었던 퀸즈의 잭슨하이츠 지하철 거리랑 너무 똑같아서 실제로 거기에 호호만두가 있었나 생각해 볼 정도였다.
머물렀던 퀸즈의 지하철도 밑 줄지어진 상가, 북적이는 사람들로 바쁜 맨하탄 거리, 쾨쾨한 냄새가 나던 브루클린 지하철...
가을 단풍이 흐드러졌던 풍경까지, 마치 그곳에 내가 우뚝 서 있는 것 마냥 생생하게 느껴졌는데
가끔 눈을 감으면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그 2019년 뉴욕의 순간순간이 그리웠다.
그리고 지금은 그 때를 너무 당연히 여겼다고 생각한다.
당장은 뉴욕에 다시 갈 수 있을까, 라는 고민부터 시작해야하니 말이다.
언제쯤 다시 뉴욕에서 페퍼로니 피자를 홀로 사먹으며 브라이언트파크를 걸어볼 수 있을까?
삶의 목적이 오로지 꿈인 사람들이 있다. 그들은 주인공 조 가드너와 같다.
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꾸던 꿈을 막상 이루고나면,
'내가 원했던게 진짜 이게 맞나?' 라는 고민을 하곤 한다.
그리고 또 꿈이 없는, 혹은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.
사실 꿈을 이룬 사람보다도 더 많겠지.
<무한도전>의 박명수의 짤을 볼 때 마다(갑자기 박명수?)
냉소적인, 반쯤은 체념한 현대인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.
'꿈은 없고요. 그냥 놀고 싶습니다.' 라는 짤은 이미 너무 유명하기도...
그치만 마냥 우습지는 않은 말이다.
이 영화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에게 똑같은 메시지를 던진다.
"꿈을 이룬 사람이든, 이루지 않은 사람이든 삶의 목적은 '꿈'이 아니다."
삶은 그냥 사는 것 그 자체이며
살아가며 보는 것, 하는 것, 모든 것이 의미있고 기쁜 일이다.
하지만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그걸 잊고 살아가고 있다.
우리는 이 영화를 보고 난 후, 좋아했던 아주 사소한 것을 다시 돌아보고 소중히한다.
괜히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며 숨을 들이마시고, 주변을 돌아본다. 그리고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지켜본다.
이게 바로 살아있음이다.
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을 알려주는 것,
영화는 그걸로 제 역할을 다한 것 같다.
세상을 살아갈 마지막 준비는 그 어떤 특기도 재능도 아닌 내 삶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치는 것이다.
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20대가 코로나19로 인해 혼란스러운 사회속에서 갈팡질팡하며 인생의 방향을 헤매고 있지만
지금 내가 살고 있는 하루를 행복하고 감사하게 여기며 즐기는 것이 진짜 인생을 후회없이 잘 사는 법일 것이다.
이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영화 <soul>은 한동안 인생영화로 남을 것 같다. :)